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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2 16:18
[초등부] 5학년 심화 <철학, 널 샬롯이라고 부를래!>
 글쓴이 : 정윤경
조회 : 176  
수업하는모습.JPG
 

철학, 널 샬롯이라고 부를래!

 

엿새 째 이어진 미세먼지가 한풀 꺾이던 지난 수요일. 나는 어김없이 돈암 센터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뻐근한 어깨를 문지르며 잠시 서 있으면 지하철은 금세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놓는다. 나는 속으로 오늘 수업 내용에 대해 복기하며 건물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유리문 너머로 몇 명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활짝 웃고 있는 표정들.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에 덩달아 내 기분도 상승곡선을 탄다.

 

돈암 센터에서 내가 맡고 있는 반은 5학년 심화반이다. 교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계단이 무척 소란스러워지면서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등장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일등으로 왔어요!” 내가 뭐라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우다다 뛰어 들어온 아이들이 목청을 높였다. 어린이철학연구소에 다니는 친구들은 꽤나 힘이 넘친다. 돈암 센터의 삼총사는 그 중에서도 유독 활기찼다. 철학 교육에 대한 의욕도 아주 남다른 편에 속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책은 <샬롯의 거미줄>으로, 대단히 유명한 고전이다. 뉴욕타임즈는 문학 작품으로서 완벽하고 기적적이다.”라는 찬사까지 쏟아냈다고 하던데. 과장은 아니었는지 책을 읽고 온 아이들의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삼총사도 마찬가지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던 새끼 돼지 윌버는 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난다. 이후 윌버는 펀의 삼촌이 관리하는 헛간으로 옮겨지게 되고, 친구도 없이 쓸쓸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런 윌버의 앞에 나타난 것이 다 아닌 샬롯이다. 샬롯은 햄으로 만들어질 위기에 처한 친구 윌버를 위해 거미줄로 글자를 짜고, 결국 윌버는 샬롯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결말까지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으니 일단 이쯤 해두자. 책의 내용의 대한 해석은 여러 방면으로 갈릴 수 있지만, 이 책의 주제를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이것이다. <우정>. 이 책은 돼지 윌버와 거미 샬롯이 나눈 우정을 중심으로 쓰여 졌다.

 

윌버에게 샬롯은 참 특별한 친구다. 샬롯은 윌버를 위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샬롯의 지극정성을 느낀 게 나뿐만이 아니었나. 우리 삼총사들도 숙제에 내가 샬롯이라면 윌버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똑같이 써 왔다. 대체 어떤 장면으로 보고 이 질문을 찾았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샬롯이 죽어가면서 윌버와 대화를 나눴던 장면에서 질문을 발견했다고 한다.

 

샬롯, 샬롯. 생각해 보니 맨 처음 널 만났을 때, 나는 네가 잔인하고 피에 굶주려 있다고 생각했어!”

윌버는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 다시 말을 꺼냈다.

왜 나에게 그렇게 잘해 주었니? 난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데.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

샬롯이 대답했다.

너는 내 친구였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야. 내가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거미줄을 짰던 거야. 어쨌든, 어쨌든 말이야, 산다는 건 뭘까?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잠시 살다가, 이렇게 죽는 거겠지. 거미가 모두 덫을 놓아서 파리를 잡아먹으려고 살기는 하지만, 알지 못할 게 있어. 어쩌면 난 널 도와줌으로써 내 삶을 조금이나마 승격시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어. 어느 누구의 삶이든 조금씩은 다 그럴 거야.”

 

나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모든 아이들이 같은 장면을 가지고, 비슷한 질문을 떠올렸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토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때부턴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질문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질문을 수정하는 이유는 함께 생각을 나누어 보기에 처음 찾은 질문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심도 깊은 토론을 위해선 질문을 일반화해야 한다. 따라서 처음 찾은 질문이 내가 샬롯이었다면 윌버처럼 할 수 있을까?”였다면, 수정을 거친 질문은 자신이 삶을 포기하면서 친구를 위해 희생해야 할까?”이다. 이렇듯 아이들은 질문을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의미 있는 질문을 만들 수 있는 연습을 한다.

 

찬성 측에 선 아이는 샬롯이 윌버를 위해 보여준 희생정신을 높이 샀다. 책에서 샬롯은 시종일관 한결같은 자세로 윌버를 타이른다. 위축된 윌버에게 다정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샬롯의 모습은 마치 멘토 같다. 샬롯은 윌버를 밀어주고, 당겨준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본인이 승격됐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단지 도움을 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샬롯 스스로도 성장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샬롯처럼 친구를 위해 희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찬성 측에 이야기를 듣던 다른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물심양면으로 윌버를 도운 샬롯에 대해 놀라움과 깊은 감명을 느낀 것이다.

 

토론을 마치고 난 뒤 나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샬롯 같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에서부터 이어져 어철연이 아이들에게 샬롯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그리하여 윌버가 변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어철연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글쓰기를 마치고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생기가 묻어난다. 무언가를 성취해냈다는 낯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나 역시 행복하다. 마치 샬롯이 된 기분이다. 윌버를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멋진 거미 샬롯. 아이들에게 샬롯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어린이철학연구소는 계속해서 거미줄을 짤 것이다. 거미줄에 적힌 글씨는 아마도 <질문하는 아이>가 될 수 있을 테고.